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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농에 의한 차의 기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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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농은 우리와 같은 핏줄인 동이족(東夷族)으로서 백성들에게 농경법을 가르치고 산천을 돌아다니면서 풀과 나무를 맛보며 식용과 약용의 가부를 판단하는 의약의 신으로 숭상 받던 인물입니다. 신농이 처음으로 차를 마시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두가지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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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먹을 것도 부족하고 음식에 대한 지식도 적었던 당시에 산천을 돌며 초목을 직접 입에 넣고 씹어봄으로써 식용 또는 약용의 가부를 가리던 신농이 하루는 100여 가지의 풀을 먹고 하나는 먹을 것도 부족하고 음식에 대한 지식도 적었던 당시에 산천을 돌며 초목을 직접 입에 넣고 씹어봄으로써 식용 또는 약용의 가부를 가리던 신농이 하루는 100여 가지의 풀을 먹고, 이 중 72가지의 독초에 중독되어 쓰러져 있었는데 바람에 날려 떨어진 차나무 잎을 먹고 해독되어 살아났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에 신농은 그 나무를 차(茶)나무라 이름하고 해독(解毒)을 제일의 효능으로 전하였습니다. 풀 초(草)와 나무 목(木) 사이에 사람 인(人)이 있는 차(茶)라는 글자는 이때 신농을 죽음에서 살려낸 데 기인하여 만들어진 것이라 전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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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설은 신농시대에는 의사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병자들은 약재를 구해서 끓여 마시곤 하였는데 신농이 병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큰 나무아래서 불을 지펴 물을 끓이고 있을 때 몇잎의 나뭇잎이 솥 안으로 떨어지면서 연한 황색을 띄었습니다. 신농이 그 물을 퍼서 마셔보니 맛이 쓰고 떫었으나 뒷맛이 달고 해갈작용과 더불어 정신을 맑게하는 작용이 있음을 알게 되어 그 뒤로부터 음용하게 되었다는 전설입니다. 그 이후 차는 질병을 치료하는 만병 통치약으로 사용되어 가격도 비쌀뿐 아니라 구하기도 무척 어려웠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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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의 내용 중에서도 효성이 지극한 유비가 어머니에게 차를 사드리고자 2년간 자리와 발을 짜서 꼬박 모았지만, 차 한통을 사기 어려웠다는 내용이 있듯이 차는 매우 귀한 물건으로서 주로 황족이나 귀족의 전유물로 이용되다가, 차의 재배가 시작되면서 당나라 이후부터 점차 보편화되기 시작하였고 전세계로 확대되었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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